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제안 업무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RFP를 넣으면 내용을 요약해 줍니다.
회사 정보를 입력하면 제안 문구를 만들어 줍니다.
몇 줄의 요청만으로 목차를 만들고, 초안을 작성하고, 문장을 다듬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몇 시간이 걸리던 작업이 몇 분이면 끝납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AI가 제안서를 이렇게 잘 쓰는데, 왜 아직도 수주 업무는 어려울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제안서를 쓰는 것과 수주를 준비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안서 작성은 수주 프로세스의 마지막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제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RFP를 분석합니다.
고객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찾고, 반드시 대응해야 하는 요구사항을 정리합니다.
평가기준도 확인합니다.
어떤 내용을 강조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우리 회사의 기술과 수행실적을 살펴봅니다.
고객의 요구사항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찾고,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무엇을 차별점으로 가져갈지도 결정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략을 바탕으로 제안 논리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문장을 씁니다.
즉 우리가 최종적으로 보는 ‘제안서’는 수많은 판단이 끝난 뒤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제안 업무에 활용할 때는 이 순서가 자주 뒤집힙니다.
처음부터 AI에게 글을 쓰게 합니다.
문제는 AI가 글을 너무 잘 쓴다는 것입니다
“고객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최적의 플랫폼 구축 방안을 작성해줘.”
AI에게 이렇게 요청하면 꽤 훌륭한 답변이 나옵니다.
클라우드 환경을 구성하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확장 가능한 아키텍처를 적용하고, 안정적인 운영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읽어보면 틀린 말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수주에서는 ‘틀리지 않은 말’보다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이 말을 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실제 수행 경험이 있는지.
RFP의 어떤 요구사항에 대응하는 내용인지.
어떤 기술과 인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제안에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수주 AI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작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주를 위한 AI 시스템을 개발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문장 생성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전의 과정입니다.
읽고, 찾고, 연결하고, 확인하는 것.
고객의 RFP에서 요구사항을 읽습니다.
수많은 사내 자료에서 그 요구사항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찾습니다.
고객의 요구와 우리의 기술·실적을 연결합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내용이 실제 근거와 일치하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그다음에야 작성합니다.
사람이 제안서를 만드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수십 개의 문서를 하나씩 열어보고 검색해야 했던 일을 AI가 훨씬 빠른 속도로 수행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생성’보다 ‘근거’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이렇게 요구했다고 해보겠습니다.
“대규모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하는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시오.”
일반적인 생성형 AI에게 답을 요청하면 어렵지 않게 방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로드밸런싱, 오토스케일링, 이중화, 모니터링, 장애 대응 체계.
기술적으로 모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수주 AI가 해야 하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먼저 우리 회사의 자료를 찾아야 합니다.
과거에 비슷한 규모의 서비스를 구축한 경험이 있는지, 당시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 실제 운영 결과는 어땠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고객의 요구사항과 연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안서에 적힌 한 문장이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다는 증거’ 가 됩니다.
그래서 제안서에 AI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AI에게 RFP를 전달하고 제안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주 업무의 핵심은 처음부터 글쓰기가 아니었습니다.
고객을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우리가 가진 역량과 연결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일.
AI가 이 과정에 들어오려면 단순한 문서 생성 도구를 넘어야 합니다.
RFP를 읽는 AI.
회사 내부의 자료를 찾는 AI.
요구사항과 수행실적을 연결하는 AI.
작성된 내용의 근거를 다시 확인하는 AI.
그리고 이 과정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때부터 AI는 단순히 ‘제안서를 써주는 도구’가 아니라,
‘수주 과정을 함께 수행하는 시스템’에 가까워집니다.
우리가 개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성형 AI의 성능은 앞으로도 계속 좋아질 것입니다.
더 긴 문서를 읽고, 더 자연스럽게 쓰고, 더 복잡한 요청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수주에서 필요한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얼마나 잘 쓰는가?” 보다,
“왜 이렇게 썼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습니다.
“그 근거를 믿을 수 있는가?”
수주처럼 한 문장의 오류가 제안 전체의 신뢰도를 흔들 수 있는 영역에서는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좋은 수주 AI는 가장 그럴듯한 문장을 만드는 AI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AI.
저희는 그 차이에서 수주 AI의 개발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회차 예고
2화. AI는 200페이지짜리 RFP를 어떻게 읽을까?
사람에게도 복잡한 RFP를 AI에게 통째로 전달하면 정말 모든 요구사항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다음 회차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문서를 AI가 실제 수주 업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요구사항’으로 바꾸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