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5시, 임원 리뷰실.
한 공공기관 제안을 준비하던 팀이 있었습니다. 마감까지 두 달, 팀원들은 주말도 반납한 채 매달렸습니다.
특히 기술파트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최신 아키텍처를 반영했고, 이행 일정은 업계에서 보기 드물 만큼 촘촘했고, 경쟁사가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믿는 기술적 디테일까지 빼곡히 채웠습니다. 담당 PM은 발표 리허설 전날 밤, 슬라이드를 마지막으로 넘겨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엔진짜 좋다. 이 정도면 안 질 이유가 없다."
리허설 당일, 발표는 매끄러웠습니다. 준비한 만큼 막힘없이 흘러갔고, 팀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발표가 끝난 직후, 한 임원이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서, 이걸 왜 우리가 써야 하는 거죠?"
순간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PM은 답을 하긴 했지만, 스스로도 느꼈습니다. 준비했던 말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짜낸 답이라는 걸요. 기술은 완벽했지만, '왜 우리인가'에 대한 한 문장은 어디에도 명확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겁니다. 결국 그 제안은 그 자리에서 방향을 다시 잡아야 했고, 마감을 코앞에 두고 팀 전체가 다시 밤을 새우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될까요
이 이야기, 어딘가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사실 이건 특정 회사, 특정 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경험 많은 우리가 더 자주 빠지는 함정입니다.
그 함정의 이름은 이겁니다. "잘 만들면, 알아봐 주겠지."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제안서를 만드는 일과, 평가위원이 그 완성도를 짧은 시간 안에 '느끼게'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 제안서를 쓰는 사람은 두 달 내내 그 내용과 살았기 때문에, 왜 이 회사가 적합한지 이미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가위원은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는 걸, 그들도 당연히 알아채리라 기대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됩니다.
"왜 우리인가" 한 문장이 있을 때, 제안팀과 평가위원이 겹치는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앞서 사례에서 팀이 놓친 건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실력은 충분했습니다. 놓친 건 그 실력을 왜 우리가 가장 잘 쓸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단 한 줄의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고 싶습니다. 이걸 PM 한 사람의 실수로 돌리면, 다음 제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왜냐하면 이건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제안서를 다 쓴 뒤에 "이 한 문장이 명확히 있는가"를 확인하는 단계 자체가 프로세스에 없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탓하고 넘어가면, 다음 팀도 같은 구멍에 빠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요
이번 시리즈에서 앞으로 계속 던질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질문 하나만 팀에 가져가셔도 오늘 원고의 절반은 소화하신 겁니다.
"이 제안서를 처음 보는 사람도, 왜 우리여야 하는지 단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것도 한 문장으로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기술이 좋고 준비가 완벽해도 임원 리뷰에서든 실제 평가 자리에서든 비슷한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로 다음 회의 때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남겨드립니다.
- 제안서를 다쓴 뒤, 팀 전체가 모여 딱 한 문장으로 "왜 우리인가"를 말해보는 시간을 따로 갖는다.
- 그문장을 이 프로젝트를 전혀 모르는 동료에게 보여주고, 이해가 되는지 물어본다.
- 문장이애매하다면, 발표 전날이 아니라 지금 다시 잡는다. 늦게 발견할수록 손실은 커진다.
오늘은 이 질문을 던지는 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이 질문에 답을 가진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이 실제로 어떻게 다르게 일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다음 회차 예고
2화. "제안은 팀워크다" — 왜 에이스 한 명으로는 안 되는가
혼자서 밤새 완벽하게 만든 제안서와, 평범한 사람들이 역할을 나눠 만든 제안서. 실제 평가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는 쪽은 어디일까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