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배점표에서 이기는 전략이 나온다
한 기관의 정보시스템 운영 고도화 사업. 제안 착수 회의에서 PM이 평가 배점표를 화면에 띄웁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는 금방 역할 분담으로 넘어갑니다.
3주 뒤 초안이 모였습니다. 60쪽 가운데 32쪽이 시스템 구성입니다. 장비 구성도와 성능 비교표가 빼곡합니다. 팀에서 가장 자신 있는 영역이라 손이 먼저 갔고, 쓰는 사람도 신이 났습니다.
운영·장애 대응 방안은 지난 제안서에서 가져온 12쪽이 전부입니다. 사업 관리는 그보다 얇습니다. 마감이 다가오자 이런 말로 정리됩니다.
"거기는 어차피 다들 비슷하게 쓰잖아."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졌습니다. 회의실에서 배점표를 다시 펼치고 나서야 이유가 눈에 들어옵니다. 시스템 구성은 100점 중 15점이었고, 가장 손을 덜 댄 운영·장애 대응이 35점이었습니다. 평가위원이 점수를 가장 많이 줄 수 있는 자리에서, 이 제안서는 할 말이 가장 적었습니다.
배점은 이쪽에, 분량은 저쪽에
같은 60쪽이라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점수가 달라집니다.
배점표를 안 보는 팀은 거의 없습니다. 탈이 나는 건 그다음입니다. 착수 회의에서 한 번 훑고 나면 배점표는 공유 폴더 어딘가로 들어가고, 그때부터 분량은 손이 가는 대로 정해집니다.
사람은 잘 아는 내용부터 씁니다. 자료가 있고 문장이 술술 나오니 써 놓으면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낯선 항목은 자꾸 뒤로 밀리다가 마감 직전에 예전 문서로 메워집니다. 누구에게나 생기는 쏠림이라 다짐만으로는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자주 이기는 팀은 이 쏠림을 처음부터 숫자로 막습니다. 목차를 잡을 때 전체 쪽수에서 표지·요약·부록 같은 고정 분량을 먼저 빼고, 남은 본문을 배점 비중대로 나눠 목차 옆에 적어 둡니다. 쓰다 보면 넘치는 장이 꼭 생기는데, 덜어낼지 말지를 정하는 기준이 이 숫자입니다.
배점 비율을 자로 잰 듯 맞추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어디에 더 얹을지 고를 때는 순서가 있습니다. 배점이 크면서 경쟁사들과 실력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항목, 그러니까 '다들 비슷하게 쓴다'는 말이 나오는 곳이 오히려 승부가 갈리는 자리입니다. 앞 장면의 운영 방안이 딱 그런 곳이었습니다.
하나 더 챙길 게 있습니다. 평가위원은 손에 든 채점표 순서대로 제안서를 넘기며 점수 줄 근거를 찾습니다. 채점표 항목이 우리 목차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안 보이면, 내용이 어딘가 들어 있어도 점수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전략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맞춰 둬야 하는 기본기입니다.
지난 화에서 찾은 발주처의 숨은 고민도 여기서 다시 꺼냅니다. 그 고민이 어느 평가 항목에 걸려 있는지 확인해 보고, 배점이 큰 항목과 겹친다면 그 장에 분량과 공을 더 얹습니다.
우리 제안서에 바로 적용해볼 것
다음 제안에서는 목차가 정해지는 날, 이것부터 챙겨 보시길 권합니다.
- 전체쪽수에서 표지·요약·부록을 빼고, 남은분량을 배점 비율대로 나눠 목차의 장마다옆에 적어 둔다.
- 평가표항목을 하나씩 짚으며우리 목차의 몇장에서 찾을 수있는지 선으로 잇는다.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는 항목이있으면 그 자리부터 채운다.
- 초안이모이면 배점표를 옆에두고 평가위원처럼 채점해본다. 고칠 순서는배점이 크면서 아직덜 채운 항목부터 정한다.
그리고 배점표는 한 장 인쇄해서 모니터 옆에 붙여 두세요. 회의 때 한 번 보는 것과, 문장을 쓰다 고개를 들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꽤 다릅니다.
다음 회차 예고
7화. 경쟁사보다먼저 우리의 승리 공식(Win Theme)을 정의하라
착수 회의를 목차 짜기로 시작하는 팀이 많습니다. 그 전에 한 문장을 먼저 정해야 하는 이유,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필립이 참여한 제안에서는 착수 첫 주에 배점표를 기준으로 목차별 분량을 다시 나누는 일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