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

아버지의 흰 봉투

시리즈 1. 세일즈는 본질적으로 변화다

1회. 아버지의 흰 봉투



1993년 봄, 부산.

일요일 아침. 열세 살 소년이 눈을 뜬다.

거실 문을 연다. 하얀 봉투가 바닥에 흩어져 있다. 아버지가 그 한가운데 앉아 파란 지폐를 세고 있다.

한 장, 두 장, 세 장. 봉투에 넣고 손끝에 침을 발라 봉한다. 봉투는 스무 개가 넘는다.

소년은 묻지 않는다. 매년 이맘때면 보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직업은 세일즈맨이다. 여행사 소속 프리랜서로, 초등학교에 수학여행 상품을 판다.

그리고 잘나간다. 부산 초등학교의 30퍼센트가 아버지의 고객이다.


비법은 세 가지다.


하나, 로비. 비수기인 여름과 겨울이면 학교를 돈다. 봉투를 건넨다. 용건은 없다. 그냥 인사다.

둘, 안부. 연초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안부를 전한다.

셋, 접대. 매일 새벽에 귀가한다.


셋째가 핵심이다. 아버지는 접대의 고수다.

소년은 그 나이에 알게 되었다.

상대가 잔을 내려놓기 전에, 공중에서 술을 채우는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관계 영업(ABS)의 고수였다.



◆ ◆ ◆



첫 번째 균열은 조용히 왔다.


어느 날부터 교장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유를 모른다.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더 두둑한 봉투를 든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관계로 쌓은 것은, 더 나은 관계 앞에서 무너진다.

심지어 그 경쟁자는 술도 더 잘 마신다. 건강한 간도 더 싱싱한 간 앞에서는 밀려나는 법이다.



두 번째 균열은 판 자체를 뒤집었다.


1997년. IMF가 왔다. 그리고 초등학교 수학여행 계약이 수의계약에서 경쟁입찰로 바뀐다.

봉투를 받을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교장 한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으로는 이제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계약 건수는 반의반으로 줄었다.

아버지의 고객 명단은 하루아침에 종잇조각이 된다. 30퍼센트의 점유율도, 이십 년의 인맥도, 새벽 두 시의 술자리도. 모두.

아버지의 찬란했던 시절은 그렇게 끝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 ◆



이 이야기는 제 이야기입니다.


그 소년이 접니다.

어른이 되어 제가 세일즈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때의 기억은 저에게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제가 배운 영업이, 아버지의 영업과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영업은 누구를 아는가의 싸움이었습니다.

제가 배운 영업은 무엇을 아는가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누구를 아는가는 환경에 기댑니다. 그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고, 제도가 그대로여야 하고, 경쟁자가 나보다 덜 친해야 합니다. 셋 중 하나만 어긋나도 무너집니다. 아버지에게는 1997년에 셋이 한꺼번에 어긋났을 뿐입니다.

반면 무엇을 아는가는 제 안에 남습니다. 회사가 바뀌어도, 업종이 바뀌어도, 담당자가 바뀌어도 따라옵니다.



관계는 일시적이고, 전문성은 지속된다.



그리고 이 둘은 속성이 달라 양립하지 않습니다.

접대로 보낸 새벽 두 시는, 고객의 문제를 파고드는 시간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그 ‘무엇을 아는가’란 무엇일까요. 제가 배운 전문가 영업은 세 가지를 압니다.


고객.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냅니다.

솔루션. 그 니즈에 맞게 기존의 제품과 서비스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합니다.

전달. 고객의 니즈와 나의 솔루션을 누구나 알아듣게 연결합니다.


이것을 전문가 영업(SBS, Solution Based Selling)이라 부릅니다.

아버지의 관계 영업(ABS)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방식이지요.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두 세계를 모두 봤으니까요. 전문가 영업은 제 몸으로, 관계 영업은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그래서 저는 압니다. 아버지가 무너진 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는 실력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 ◆ ◆


세일즈를 하는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지금 몸담은 회사의 간판을 떼고,

지금의 업종에서 벗어나도,

여러분은 무엇을 팔 수 있습니까.


그 답이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의 전문성입니다.

답이 없다면 — 아직 관계에 기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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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100세 인생, 60세 정년 — 그 사이 40년을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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