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1. 세일즈는 본질적으로 변화다
2회. 요구사항을 넘어, 니즈에 답하는 세일즈
지난 회차에서 세일즈가 어려운 네 가지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마지막이 ‘소통의 미숙함’이었습니다.
세일즈에서 소통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 요구사항을 넘어, 니즈에 대응하는 세일즈
- 정보가 아니라, 메시지를 던지는 세일즈
-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말하고 쓰는 세일즈
오늘은 이 중 첫 번째, ‘요구사항을 넘어 니즈에 답하는 것’을 깊이 다루려 합니다.
당신이 쓴 건, 사실 제안서가 아닙니다
조금 도발적인 말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30페이지짜리부터 1,000페이지가 넘는 제안서까지 컨설팅해 왔습니다.
그 수많은 제안서에서 발견한 공통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실상 모든 제안서가, RFP에 적힌 요구사항에만 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제안서(Proposal)가 아닙니다.
기술설명서(Technical Explanation)이거나 사업수행계획서(Statement of Work)입니다.
왜 그럴까요. RFP의 요구사항은 대개 두 축으로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기술적 성능 수준, 다른 하나는 사업 운영·관리 방안.
그러니 이 요구사항을 하나씩 받아 적고 답하면, 결과물은 ‘설명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안은 ‘답변’이 아니라 ‘설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안서는 세일즈 활동의 일부입니다.
세일즈가 무엇입니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제시하고, 그것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고객이 요구한 사항에 하나씩 답을 채워 넣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제안서를 수동적으로 씁니다. 본인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요.
입으로는 전략이니 차별화니 말하지만, 제안 현장에서 실제로 보면 그 전략과 차별화에는 알맹이가 없습니다.
표면적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고객의 니즈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안서를 개발할 때 늘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팀에게.
“고객의 니즈는 무엇일까?”
그런데, 고객도 자기 니즈를 모릅니다
“그럼 고객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나요?”
안타깝지만 안 됩니다. 고객을 만나 “니즈가 뭐예요?”라고 물어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고객조차 자신의 니즈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고객은 그 전문가가 제안서에서 자신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바랍니다.
증거는 RFP 그 자체에 있습니다. 우리가 매번 받는 RFP, 그것은 100점짜리일까요. 아닙니다. 100점짜리 RFP는 세상에 없습니다.
저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이걸 확신하게 됐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사내 개발팀에 제가 원하는 기능을 나름 열심히 정리해 요구사항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과물이 나오니 고칠 부분이 수십 개씩 보였습니다. 저조차 제 니즈를 요구사항으로 온전히 옮기지 못한 겁니다.
고객도 똑같습니다. RFP에 적힌 요구사항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 아래엔 미처 표현되지 못한 진짜 니즈가 잠겨 있습니다.
빙산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수면 위로 보이는 부분이 요구사항이라면, 그 아래 잠긴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니즈입니다.
니즈는, 사실 대단한 게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합니다.
니즈를 찾는다고 하면, 경쟁사는 모르는 우리만 아는 대단한 비밀을 캐내는 일처럼 생각합니다.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니즈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고객이 겪고 있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명확히 알지 못하는 그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수년, 수십 년의 사업 수행 경험이 있으니까요. 현장에서 쌓인 그 경험이면, 최소한 RFP 요구사항의 의도와 목적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접근하지 않아서, 귀찮아서 안 할 뿐입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요구사항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 요구사항의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로.
콜라를 달라는 손님에게, 얼린 생수를 판 이유
쉬운 예로 가보겠습니다.
한여름, 당신은 한 시간을 뛰고 목이 탑니다. 근처 슈퍼에 들어가 주인 A에게 말합니다.
“콜라 하나 주세요.”
“하필 콜라가 다 떨어졌네요.”
당신은 5분을 더 걸어 다른 슈퍼에 갑니다. 여기도 콜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인 B는 이렇게 답합니다.
“에이, 요즘 누가 몸에 안 좋은 콜라를 드세요.
어젯밤 얼려둔 생수가 있는데, 이거 시원하게 드시는 게 어때요?”
당신은 1초의 고민도 없이 생수를 사서 들이켭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주인 A는 당신의 요구사항(‘콜라’)에 충실했습니다. 하지만 세일즈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인 B는 당신의 진짜 니즈(‘갈증 해소’)에 답했습니다. 그리고 세일즈가 일어났습니다.
세일즈의 본질은 요구사항에 대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니즈를 찾아내 해결하는 것입니다.
요구사항에 갇히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문제는, 현장의 수많은 제안이 여전히 ‘콜라’에만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통신사 수주 컨설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보는 광경이 이렇습니다.
“A사가 망을 2개 친다는데, 우리는 3개 치자.”
“A사가 통신 속도를 1T로 설계했다는데, 우리는 2T로 가자.”
“A사가 트래픽 용량 200G로 한다는데, 우리는 400G로 하자.”
이것이 바로 빙산 위(요구사항)에 갇힌 사고입니다. 콜라라는 요구사항에만 집중하면, 제안은 이런 싸움이 됩니다.
A사: “우리는 550ml 콜라를 드립니다.” (망 2개)
B사: “우리는 1.5L! 아니, 1+1으로 드립니다!” (망 3개)
이 프레임에서는 양(Quantity)이 곧 전략이고, 투자 비용이 곧 전략입니다. 결국 누가 더 쏟아붓느냐의 싸움이죠.
다른 산업도 똑같습니다. 수백억 규모의 기업 구내식당 운영 입찰을 컨설팅한 적이 있습니다. ‘월 1회 특식 제공’이라는 요구사항이 있었는데, 우리 측 특식 제안 메뉴가 랍스터였습니다. PM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답이 놀랍도록 단순했습니다.
“경쟁사가 티본 스테이크를 준다고 해서요.”
‘연 1회 VIP 식사’라는 요구사항도 있었습니다. 경쟁사가 유명 셰프 A를 초청한다고 하자, 우리 고객사는 유명 셰프 B를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출혈 경쟁입니다. 뚜렷한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상대가 하니까, 상대보다 더. 이것이 요구사항에 갇힌 제안의 끝입니다.
프레임을 바꾸면, 싸움의 판이 바뀝니다
다시 콜라로 돌아가 봅시다. 만약 니즈에서 출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1단계 — 질문한다.
“고객은 왜 콜라를 원했지? 진짜 니즈는 무엇이지?” → 갈증 해소.
2단계 — 전략을 세운다.
“콜라는 오히려 갈증을 키운다”는 사실을 강조해, 경쟁사(코카콜라)의 강점을 무력화한다.
3단계 — 메시지로 만든다.
그리고 이 전략을 이렇게 전달합니다.
주장 — 얼린 생수라면, 40% 저렴한 비용으로 0.5초 만에 갈증을 100%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유 — 지금 당신은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콜라의 짜릿한 목넘김은 일시적이며, 오히려 갈증을 두 배로 키웁니다. 그래서 저희는 얼린 생수를 제안합니다.
사실 — ① 콜라 섭취량과 갈증도의 상관 그래프 ② 콜라와 생수의 가격 비교(콜라 1,500원 vs 생수 800원)
같은 상황, 같은 상품입니다. 하지만 ‘양 싸움’ 프레임에서 ‘니즈 해결’ 프레임으로 넘어가는 순간, 경쟁의 판 자체가 바뀝니다. 더 이상 누가 더 큰 콜라를 주느냐로 싸우지 않습니다.
고객은, 제안서를 원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요구사항에 답을 채워 넣은 기술설명서. 그리고 고객의 니즈에 깊이 답하는 제안서.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후자, 제안서입니다.
그러니 다음 제안을 시작하기 전에, 팀에게 이 한 문장을 먼저 던지십시오.
“고객은 콜라를 원한 걸까, 아니면 갈증 해소를 원한 걸까?”
그런데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방금 마지막 예시에서 저는 ‘주장 → 이유 → 사실’이라는 구조를 썼습니다. 이것을 헤드라인 구조라고 부릅니다.
니즈를 찾았다면, 그다음은 그것을 어떻게 메시지로 만들어 전달하느냐입니다. 아무리 좋은 니즈를 찾아도, 전달에 실패하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다음 회차에서, 바로 그 ‘메시지를 던지는 세일즈’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위닝인사이트 세일즈 트랙 다음 회
3회. 정보의 홍수속, 고객이 찾는 건 메시지다